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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의 비명, 그리고 김 과장의 믹스커피
오후 2시, 사무실의 나른함이 밀려올 때면 김 과장은 어김없이 탕비실로 향했다. 종이컵에 노란색 믹스커피 두 봉지를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 그 순간, 달콤한 향기가 피로를 잠시 잊게 했다. 45세, 배가 조금 나온 평범한 직장인 김 과장에게 이것은 유일한 낙이었다.
"과장님, 이번 건강검진 결과 나왔어요?"
옆자리 박 대리의 말에 김 과장은 책상 구석에 처박아 둔 봉투를 꺼냈다. 사실 열어보기가 두려웠다. 지난달부터 갈증이 심해져 물을 달고 살았고, 밤중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떨리는 손으로 결과지를 펼쳤다. 붉은색 글씨가 눈을 찔렀다.
[공복혈당 135mg/dL, 당화혈색소 7.2% - 당뇨병 의심, 즉시 내원 요망]
세상이 빙 도는 것 같았다. 당뇨라니. 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을 절단하셨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떠올랐다.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김철수 님, 당 수치가 꽤 높습니다. 일단 약을 드시면서 조절하셔야 해요. 합병증 예방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김 과장은 거부했다.
"선생님, 제가 운동도 하고 술도 끊겠습니다. 약은... 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면서요? 저 아직 젊은데 약쟁이가 되긴 싫습니다."
의사는 한숨을 쉬며 3개월의 유예 기간을 주었다. 그날부터 김 과장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점심엔 닭가슴살 샐러드만 씹었고, 퇴근 후에는 헬스장에서 땀을 비 오듯 쏟았다. 좋아하던 믹스커피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 달이 지났다. 몸무게는 3kg이 빠졌다. '이 정도면 됐겠지.' 김 과장은 자신만만하게 가정용 혈당계에 손가락을 찔렀다. 삐빅. [식후 2시간 혈당 210mg/dL]
기계가 고장 난 게 아닐까? 다시 쟀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왜? 그때, 당뇨 환우회 카페에서 만난 닉네임 '췌장지킴이'님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지 마세요. 초기 당뇨는 췌장이 과부하가 걸려 파업 직전인 상태입니다. 이때 운동과 식이요법만 고집하는 건, 지친 말에게 채찍질만 하는 꼴입니다. 약은 평생의 족쇄가 아니라, 지친 췌장을 쉬게 해주는 '휴가'입니다."
순간 김 과장의 머리를 스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약을 먹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내 몸을 지키는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는 것. 그는 다음 날 아침, 겸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가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 하얀 알약 하나를 입에 털어 넣으며 그는 다짐했다. '이건 평생 먹을 약이 아니라, 내 췌장을 살리는 영양제다.'
3개월 뒤, 김 과장의 당화혈색소는 5.8%로 정상 범위에 들어왔다. 의사는 웃으며 약 용량을 절반으로 줄여보자고 제안했다. 김 과장은 그제야 알았다. 약은 독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돌아가는 다리였다는 것을.
🩺 의사가 권했다면, '지금 당장' 드셔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김 과장처럼 "약을 시작하면 평생 못 끊는다"는 공포 때문에 복용을 미룹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혈당약 복용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췌장 기능 보존: 고혈당 상태가 지속되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파괴됩니다. 이를 '당독성(Glucose Toxicity)'이라고 합니다. 약을 먹어 혈당을 빨리 낮춰주어야 췌장이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합병증 예방: 당뇨의 진짜 무서움은 합병증입니다. 눈(망막병변), 콩팥(신부전), 신경(말초신경병증)이 망가지는 것을 막으려면 초기부터 강력한 혈당 조절이 필수입니다.
약 끊을 기회 확보: 역설적이게도, 초기에 약을 써서 혈당을 확실히 잡고 생활습관을 교정하면, 나중에 약을 줄이거나 끊을(관해)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버티다가 췌장이 다 망가진 뒤에 약을 쓰면, 그때는 정말 평생 약을 먹거나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따라서 의사 선생님이 약을 권유하셨다면, 거부감 갖지 말고 즉시 복용을 시작하세요. 그것이 가장 현명한 길입니다.
📝 당뇨약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리고 관리 전략
혈당약 복용을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의학적 근거를 들어 상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왜 '지금' 먹어야 하는가? (Legacy Effect) 📉
당뇨 치료에는 '레거시 효과(Legacy Effect, 유산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당뇨 진단 초기 1~2년 동안 혈당 조절을 얼마나 잘했느냐가 향후 10년, 20년 뒤의 합병증 발생률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초기 제압: 초기에 약을 써서 당화혈색소를 정상 범위(6.5% 미만)로 유지하면, 나중에 혈당 관리가 조금 소홀해지더라도 심혈관 질환이나 사망 위험이 낮게 유지됩니다.
골든 타임: 진단 초기야말로 췌장 기능이 어느 정도 살아있는 '골든 타임'입니다. 이때 약물로 췌장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기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2. "약을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 ❌
이것은 가장 큰 오해입니다.
진실: 약을 평생 먹게 되는 이유는 약 때문이 아니라, 당뇨병 자체가 진행성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약 복용을 미루다가 췌장이 완전히 고장 나면 그때는 정말 되돌릴 수 없습니다.
관해(Remission)의 가능성: 초기 당뇨 환자가 약물 치료와 철저한 생활 습관 개선(체중 감량 등)을 병행하면, 나중에는 약 없이도 정상 혈당을 유지하는 '관해'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약은 평생의 족쇄가 아니라, 관해로 가는 사다리입니다.
3. "당뇨약이 콩팥(신장)을 망가뜨린다?" ❌
진실: 당뇨약 때문에 콩팥이 나빠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콩팥을 망가뜨리는 주범은 '조절되지 않는 고혈당'입니다.
혈당이 높으면 끈적끈적한 피가 콩팥의 미세 혈관을 막아 신부전을 일으킵니다. 약을 먹어 혈당을 조절하는 것이야말로 콩팥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4. 당뇨약의 종류와 작용 원리 💊
의사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약을 조합하여 처방합니다.
메트포르민: 가장 기본이 되는 약입니다. 간에서 포도당 생성을 막고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합니다. 체중 증가 부작용이 없고 안전합니다.
DPP-4 억제제: 인슐린 분비를 돕는 호르몬을 활성화합니다. 저혈당 위험이 적습니다.
SGLT-2 억제제: 소변으로 당을 배출시켜 혈당을 낮춥니다. 체중 감량과 심혈관 보호 효과가 있습니다.
설포닐우레아: 췌장을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합니다. (저혈당 주의)
5. 약과 함께해야 할 생활 수칙 🏃♂️
약만 믿고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면 약의 용량은 계속 늘어납니다. 약은 '거들 뿐'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식사 순서 바꾸기: 채소 → 단백질 → 탄수화물 순서로 드세요. 혈당 스파이크를 막아줍니다.
허벅지 근육 키우기: 근육은 포도당을 저장하는 창고입니다. 스쿼트나 계단 오르기로 허벅지를 단련하세요.
정기적인 검사: 3개월마다 당화혈색소를 체크하여 약이 잘 듣는지, 용량 조절이 필요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A)
Q1. 당뇨약을 먹었더니 설사를 하고 속이 더부룩해요.
👉 A. 처방받으신 약 중에 '메트포르민'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메트포르민의 가장 흔한 부작용이 소화불량, 설사, 가스 참입니다. 다행히 이 증상은 복용 후 1~2주가 지나면 몸이 적응하면서 대부분 사라집니다. 만약 증상이 너무 심해 일상생활이 어렵다면,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여 약을 서방정(천천히 녹는 약)으로 바꾸거나 용량을 조절해 보세요. 임의로 중단하시면 안 됩니다.
Q2. 여주, 돼지감자 같은 건강기능식품으로 혈당을 잡으면 안 되나요?
👉 A. 보조적인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치료제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식품은 약물처럼 일정한 농도와 효능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의존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쳐 합병증이 온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병원 처방약을 기본으로 하시고, 식품은 의사와 상의 후 보조적으로만 섭취하세요.
Q3.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약을 끊어도 되나요?
👉 A. 절대로 임의로 끊으시면 안 됩니다. 혈당이 정상인 이유는 '약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을 끊으면 다시 혈당이 치솟을 수 있습니다. 약을 줄이거나 끊는 것은 3~6개월 이상 안정적인 혈당이 유지되었을 때, 의사의 판단하에 서서히 진행해야 합니다. 이를 '약물 휴지기'라고 합니다.
Q4. 당뇨약 먹을 때 술 마셔도 되나요?
👉 A.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알코올은 간의 당 생성 능력을 억제하여 급격한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설포닐우레아 계열의 약을 드시는 경우 저혈당 쇼크 위험이 큽니다. 또한 술은 칼로리가 높아 체중 관리에 치명적입니다.
Q5. 저혈당 증상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하나요?
👉 A. 약을 먹고 식사를 거르거나 운동을 과하게 하면 저혈당(70mg/dL 이하)이 올 수 있습니다. 손 떨림, 식은땀, 두근거림, 현기증 등이 나타납니다. 이때는 즉시 단순당(사탕 3~4개, 주스 반 컵, 설탕 1큰술)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초콜릿은 지방 때문에 흡수가 느려 추천하지 않습니다.